휴청 설교 Two "Re-Building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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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6:15-16

(배경설명)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다른 나라에 끌려간 것은 앗수르 제국이 북이스라엘 왕국을 침입한 때 부터입니다. 앗수르는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곳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나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 약 150년 후에 바빌론의 느붓갓네살왕이 남유대를 침공해서 세 차례(605, 597, 586년)에 걸쳐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이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빌론 포로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난 후 칙령을 반포해서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살던 유대인들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칙령이 선포된 후 세 차례에 걸쳐 유대인들의 귀환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총독 스룹바벨의 지휘아래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주전 536년에 일차로 귀환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돌아 온 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전을 재건합니다. 성전은 주전 516년에 완공이 됩니다. 성전 재건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이방인들과의 결혼 등을 통해 영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와중에 학사 에스라가 주전 458년에 2000명이 채 안 되는 무리를 이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흥운동은 얼마 가지 않아서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합니다.
세번째 귀환은 페르시아 아닥사스다황제의 술 맡은 관원이었던 느헤미야가 주전 444년경 일단의 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려하여 성벽을 재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도모했습니다.
성도들이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를 읽을 때 역사적인 순서에 있어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정리해 보면 에스더서는 역사적인 순서로 보면 에스라서 6장과 7장 사이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면 됩니다.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어 사악한 하만 장군의 음모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합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그 다음으로 느헤미야가 귀환하게 됩니다.
(전환) 휴청의 성전이 재건되고 예배가 회복된다면 그 다음 할 일이 있다. 우리 공동체의 허물어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다.
본문 설명)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 살고 있었던 술관원장 (cubbearer) 였다.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무찔렀을 때, 고레스는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에 가도록 허락했다. 200-300만명이 페르시아에 있었다고 했는데 오직 50,000명만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이미 황폐해진 예루살렘에 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연관성) 마치 세상이 좋아서 휴청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것 같다.
특별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울게 됩니다.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성벽과 성문은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두꺼운 벽은 적들로부터 지켜주고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도시 생활의 중심이었고, 여러 상업과 물물교환의 중심지였다.
성벽은 고대 사회에서 안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제왕들은 성을 가능한 한 두껍고, 높이 쌓아서 적들의 침입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바빌론의 느붓갓네살왕 때 쌓은 바빌론성은 높이가 100피트, 두께가 380피트로 성벽 위로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고 하는 비전을 가지게 된 것은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 때문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서 궁정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안위만을 생각하면 굳이 예루살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동포를 잊지 않고 예루살렘 소식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연관성)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루살렘 안에 성전이 있었고,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에 예배드리는 처소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성벽 재건은 중요했다. 그런데 그곳이 불타고 허물어져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광경을 볼 때 어땠어요?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슬퍼져서 그 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했고 기도했고, 회개했고, 금식했고 성벽 재건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단호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적용)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져있고, 성벽이 무너져 있는 광경을 보면서 우리가 기도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길 바란다. 특별히 성벽은 우리 공동체의 보호하는 보호막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성전의 재건을 외쳤다면 오늘은 성벽의 재건이다.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나아가 우리 안에 소속감이 회복되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휴청 삼위일체 사역 중에 하나가 Fellowship 사역이다.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주 안에서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있다. 무너진 성벽 중에 하나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바로 ‘라이스'와 ‘UOH’이다. 그리고 새신자들이다. 이들이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
1) One on One Discipleship
2) 새신자 파티
3) 라이스 hybrid discipleship 모임
이 모든 것들을 하다보면 이것들을 방해하는 대적자들이 생길 것이다. 느헤미야에서도 수많은 외부의 적들과 내부의 적들이 있었다. 외부적의 적으로는 대표적으로 산발랏과 암몬사람 도비야, 그리고 게셈이 있었다. 이들을 이방인이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생명을 위협하기까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느혜미야는 기도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외부의 적이 지나가니 내부의 적이 나타난다.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바로 낙심 혹은 실망이라고 하는 적이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적도 몰려온다.
공사 도중에 “적들이 갑자기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다 (11절)”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는 일군들에게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도구를 들고 일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나팔을 든 특별한 파숫군을 세웠습니다(19-20절). 그러나 그는 일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적용)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의 공격에 대비하여 한 손에는 반드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한 손으로 우리의 무너진 성벽을 보수해야 한다.
**Christ Connection: 느헤미야는 적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보수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단 마귀로부터 보호해주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요새가 되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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